메이오정변 쇼군의 승계 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메이오정변 쇼군의 승계 이야기

키보드잘치는편 2020. 8. 30. 22:58

메이오정변 쇼군의 승계 이야기

메이오 정변 쇼군의 승계 이야기

 

오닌의 난이 끝난 뒤 1493년 관령이었던 호소가와 마사모토가 쿠데타를 결행하여 10대 쇼군 요시키를 11대 요시지미를 옴닉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메이오 연호를 따서 메이오 정변이라고 합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요시마사의 후계자를 두고 전투를 벌였던 오닌의 난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끝났지만 요시마사의 아들 요시히사가 쇼 군직을 승계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동군의 우세로 끝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쇼군을 시켜주겠다면 형 말을 들었던 요시미는 명목상이나마 쇼군의 총수였기 때문에 오닌의 난이 동군 측의 승리로 정리되는 기미가 보이자 1477년 적자인 요시키를 데리고 미노로 달아났습니다. 9대 쇼군 요시히사는 땅에 떨어진 쇼군의 권위를 재확립하기 위해 오닌의 난 당시 자신의 반대편 서군 소속이었던 오오미 슈고 록카쿠 다카 유리에 대한 토벌을 강행했습니다. 록카쿠 정벌로 일시적으로나마 막부의 권위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요시히사는 곧 주색에 빠져 군사정치에 소홀해지면서 정치는 전적으로 측근들에게 맡겼고 그 결과 막부 권력이 쇼군 측근들에 의해 농단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요시히사 자신은 정벌을 끝마치지 못한 채 1489 진중에서 병사했습니다.

 

요시히사가 죽자 은거했던 8대 쇼군 요시마사가 다시 정무에 복귀하려 했으나 당시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히노 도미코가 요시마사의 정무 복귀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요시마사 자신도 중풍으로 인해 정무를 정상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 10대 쇼군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도미코는 자신의 아들이었던 9대 쇼군 요시히사가 성장하여 자신과 사이가 소원해져 일시적으로 권력을 잃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차기 쇼군 추대에 집착했습니다. 도미코가 자신의 여동생 아들이라는 이유로 요시미의 적자인 요시키를 차기 쇼군으로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미노에 달아나 있던 요시비 부자와 화해하고 교토로 불렀으며 요시키가 정식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10대 쇼군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호소가 가츠모토의 아들이면서 관령이었던 마사모토는 이 결정에 반대하 요시미 부자와 대립했습니다. 마사모토는 자신의 아버지인 가쓰모토인 후견으로 후계자까지 올랐으면서도 가쯔 모토를 배반하고 서 군으로 돌아선 요시미 부자에 배신감을 가지고 있어 요시키 쇼군 승계에 강력히 반발했고 이런 그들의 관계가 메이오 정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10대 쇼군에 요시키가 취임한 뒤 막부 정권을 맡게 된 요시미와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도미코 간에 점점 갈등이 심해지자 도미코는 요시키의 쇼군 승계를 반대했던 소호가와 마사모토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요시미 또한 막부의 실력자인 마사모토와 대립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요시미도 마사모토에게 쇼군 취임식을 그의 저택에서 치르겠다고 회유책을 제안하지만 요시키가 쇼군에 즉위한 다음날 관령에서 행동으로 요시키 쇼군 승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합니다.

 

아버지 요시미가 죽고 나서도 쇼군 요시키는 도미코와 마사모토를 막장에서 배제시키는 등 적대관계를 계속 이어나갑니다. 요시키가 취임한 후 마사나가가 세로 이 막부의 실력자가 됩니다. 1493년 쇼군 요시키는 마사 나가 와 함께 요시토 요를 토벌하기 위해 가와 치국으로 출병하였고 이때 요시토 요를 토벌하면 다음 표적은 마사모토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취임 시 정무를 관령이었던 자신에게 맡기겠다고 약속을 하고서도 자신의 의견이 무시된 것을 보고 화사 난 마사모토는 요시키가 출정하면서 자신에게 교토를 맡긴 것을 기화로 그해 4월 요시토요 토벌에 따라가지 않고 교토의 세력과 연합하여 쿠데타를 강행합니다.

 

이전부터 쇼군 후보로 추천했던 요시즈미를 제 11대 쇼군으로 옴닉 하게 됩니다. 이것이 메이오 정변이라고 합니다. 노인의 난이 그래도 쇼군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이묘들이 편을 갈라 서로 전투를 벌였던 것에 반에 막신에 의해 쇼군이 쫓겨난 사건이라고 해서 전국 시대의 시작을 메이오 전변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쿠데타가 성공하자 마사모토는 가신들을 요시토요 지원군으로 가와치에 파견합니다. 쿠데타 소식이 전 쇼군 요시키 진영에 전해졌고 새로운 쇼군에게 복종하라는 밀서가 오자 거의 대부분이 교토로 귀환해버렸습니다. 귀환하지 않은 자들 가운데 요시키가 측근이라고 여겼던 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마사 나가 와 함께 쇼 가쿠지 성에서 농성하던 요시키는 측근들이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고 마사 나가 마저 자살하자 투항하여 교토에 유패 됩니다. 마사 나가는 요시키를 죽이지 않고 유배시키기로 결정하지만 요시키는 마사나가의 영지로 달아납니다.

 

한편 쿠테타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그래도 천왕인 자신이 임명한 쇼군이 폐위된 것에 격분해 천왕은 5번이나 양위를 하겠다고 뜻을 표명했지만 정권의 전통성을 유지하기 원했던 막부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실상은 당시 조정은 막부가 후원해 주는 돈이 없으면 의식조차 치르기 어려운 상태였고 죽고 나서도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었기 때문에 40일간이나 천왕의 시신이 국내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